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제의 이름을 잇다/등장인물 (문단 편집) == [[당나라]] == 최종보스격이자 원역사와 다르게 최악의 피해를 입은 국가 2. 사실상 신라보다 더 심하게 이 작품에서 당의 취급은 안 좋다. 660년 백제 멸망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였고, 2차, 3차 고당전쟁에서 수십 만의 인력과 물자를 실제 역사보다 더 심하게 소모했다. 원 역사에서 수 양제 시기로 까지 국력을 회복하는데 당 현종 집권기까지 걸린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진즉에 나라 하나 무너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 3차 고당전쟁 실패 이후 유인궤를 요서로 보내 지속적으로 약탈을 하여 요동 방위선의 복구를 막고자 했으나 부여풍의 반격으로 등주의 당 수군 함대가 전멸하고 산동 반도 전역이 요동 약탈전의 보복에 당해서 초토화된다. 거기에다 부여풍의 요서 진격과 토번 가르친링의 대규모 침공으로 삼면전선을 강요받는다. 당 태종이 세워놓은 부병제는 이 때를 기준으로 사실상 붕괴된다. 배행검이 끌어모은 20만 대군의 패배로 인해 삼한과 토번을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정병들은 사실상 '''소멸'''했으며[* 부여풍 왈 원역사 '''안사의 난''' 수준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 반란은 당나라 몰락의 본격적 신호탄이 된 대전쟁으로 '''역사적인 사망자를 냈고''' 수도인 장안과 낙양이 연달아 털려버린 대사건이다.] 문제는 이러고도 삼면전선 중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다는 점이다. 제2차 고당전쟁부터 10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군사들이 갈려나간 점을 고려하면, 원 역사 당과 비교해도 '''이미 망해야 정상'''인 수준이다. 정병들만 50-100만 가까이 말아먹은 것. 태원과 연운 16주 등을 방어할 마지막 정병을 빼면 무한해보이던 동원력은 이미 한계고, 이제 백제와 토번 양쪽을 전부 막을 힘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일부 요충지에 의지하지 않으면 제대로 싸울 수도 없다. 다만 측천무후의 능력으로 힘겹게라도 어찌 버티는 중이었으나 하서와 연운, 동서 양쪽의 요충지가 넘어가버린데다 내부에서 반정권 반란까지 일어나며 망조를 숨길 수 없게 되었다.[* 서경업 세력은 어디까지나 반정권이지, 반당이 아니다. 물론 내심은 반당독립을 주장하지만 대의명분으론 구국을 외치는 중이다. 그러나 상황을 철저히 챙겨준 부여풍에 의해 이들 의병들도 결국 당군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으로 남고 말았다.] 결국 부여풍이 군사를 태원으로 보내어 퇴로를 차단하자 내부 반란으로 정권이 붕괴하고 백제-토번 연합군에게 장안이 함락당한다. 주작대로를 기준으로 토번군이 지배하는 서쪽은 초토화되지만, 동쪽의 백제 점령지와 꼭두각시 황제가 거처할 황궁은 그나마 무사히 남는다.[* 이는 임유관을 돌파한 이후부터 백제군에게 전투도 거의 없고 대운하를 이용하는 등 편안하게 기동한 덕분이다. 이 때문에 동쪽의 점령지에서 부호들이나 관리들의 저택에서 보물과 서적 등을 강탈했을 뿐, 장안성 백성들을 위해 식량과 땔감까지 남겼다. 반면, 장안에 도착하기까지 계속해서 전투들을 치르며 도착한 토번군에게 서쪽의 점령지는 처절히 약탈을 당하고 만다.] 중심지인 관농 지역이 초토화되고, 하서와 요서 등 국경 방위에 중요한 요충지 대부분을 빼앗겼으며, 강남 지역은 통째로 서경업에게 넘어간 상황이다. 심지어 제번 연합에 속한 백제와 토번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공물을 요구하면서 더 압박할 생각. 또한 부여풍은 고의적으로 연운과 요서 인근 요충지에 설치된 담로에 봉해진 백제의 공신들에게 해당 지역의 동화 이후라면 백제의 협력을 얻어 확장하라고 허가를 내려주면서 군사적 위협을 지속적으로 가하게 만들었다. 약화된 상태에서도 200여 년을 더 지속했으나, 결국 건국 초기처럼 북중국의 힘을 모아 세를 확장하지 못했고,[* 사실 결말부 시점에서의 북중국은 사실상 괴멸 상태가 되었기에 세를 확장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관중은 토번에게 파괴당했고, 하북은 백제에게 빼앗겼으며, 산동 역시 백제 수군에게 약탈당하고 담로들의 확장으로 무너져가는 신세였다.] 끝내 새로이 발흥한 송나라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송나라 역시 몽골에 멸망하는 순간까지 토번과 백제의 담로를 어쩌지 못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